◆ 무엇부터 먹을까, 한정식='한 상 가득'이란 말로는 모자란다. 상을 갈아 내오는 게 보통이다. 접시마다 한 젓가락씩 가기도 벅차다. 남도 어딜 가든 그렇다. 그러면서도 맛은 제각각이다. 기본 양념인 된장.간장.고추장에서 각종 젓갈.장아찌까지 집집마다 직접 담그기 때문이란다.
젓갈과 장아찌도 도회지에서 흔히 보던 것과는 다르다. 굴비 살을 찢어 만든 '굴비 장아찌', 고흥에서 딴 굴을 간장에 저린 '진석화젓', 민물 새우 '토하젓'등등이 상에 오른다. 2 ~ 3년 된 김치도 별미다. 오래됐으면서도 군내가 없다. 짜게 버무려 물기를 쏙 빼 보관하는 게 비결이란다.
남도 한정식집 어딜 가든 공통으로 내오는 것은 '삼합'. 삭힌 홍어에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합쳐 먹는 것이다. 김치와 돼지고기가 홍어 특유의 알싸한 냄새를 가라앉혀 준다.
한 상 가득한 요리를 먹는 순서는 없다. 그냥 젓가락 가는 대로다. 하지만 맛을 즐기는 법은 있다. 자극적인 삼합을 먹고 나서 바로 부드럽게 다져 구운 떡갈비를 먹어서는 고기맛이 안 날 터. 그때 중간에 입을 가시라고 어느 집이든 물김치나 갓 담근 싱싱한 김치를 내놓는다. 그러니까 음식 한 입 다음에 김치 한 점이 남도의 맛을 제대로 즐기는 요령이다.
광주시가 '한정식 명가'로 지정한 아리랑하우스(062-525-2111)에서는 바로 그런 용도로 보쌈김치를 준다. 사과와 배를 갈아 넣어 만든 보쌈김치의 시원함이 겨울에 먹는 동치미에 가깝다.
강진군 버스터미널 부근 명동식당(061-434-2147)의 김정훈(50.여)사장은 "남도 한정식도 변한다"고 말했다. 뭐든지 묵혀 '골코롬한' 냄새가 진동하던 차림상이, 점점 신세대 입맛에 맞게 부드러운 맛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젓갈 무침 양념에도 참기름이나 초를 많이 넣어 고소함과 새콤함으로 냄새를 누르는 식이다.
대체로 한정식은 1인분에 2만5000원 이상. 막상 상을 받아보면 그 푸짐함에 비싸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세사람 이상이어야 주문을 받는 게 보통이다.
먹는 재미 '낙지'='낙지는 쫄깃하다'는 것은 편견이다. 남도의 낙지는 부드럽다. 이름난 무안.신안 갯벌에서 잡아 올린 낙지는 더욱 그렇다. 다리가 길다는 것도 이 동네 낙지의 특징. 바닷속에서 사는 남동해안의 낙지와는 달리, 개흙 속을 돌아다니다 보니 하체가 발달해 그렇다고 한다.
남도의 낙지 1번지는 무안 버스터미널 뒷골목이다. 낙지 전문점 30여곳이 몰려 있다. 도회지에서는 금값인 세발낙지가 여기서는 마리당 1000원이다. 크기는 주꾸미보다 조금 큰 정도.
이곳 하남횟집(061-453-5805)의 '기절낙지'가 별미다. 머리를 뒤집어 먹물통을 빼고는 소쿠리에 넣고 문질러 낙지를 기절시켜 내온다. 주인 김기순(여.41)씨는 "육질이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함께 내오는, 낙지 머리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 맛이 개운하다. 2인용 한접시에 3만원.
목포엔 낙지의 모든 것을 모은 집도 있다. 목포우체국 근처 호산회관(061-278-0050)이다. 고추장 양념 낙지구이(1만5000원), 이름만 보면 재료를 알 수 있는 낙지갈비대하찜(2만5000원), 낙지에 야채만 넣고 끓여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연포탕(1만2000원) 등 14가지 낙지 요리가 있다.